Silver lining's tapestry

2016년 1월 5일 화요일

겸허,견실을 모토로 살고 있습니다. #032.

제 32화



가을이 되어, 운동회 시즌이 다시 다가왔습니다.
고학년이 되면 운동회 실행위원이라는 역할이 돌아옵니다.
그리고 어째선지 제 반에서는 여자 실행위원으로 제가 뽑히고 말았습니다.
딱히 운동신경이 좋은 것도 아닌데, 기획을 잘 짜거나 행동력이 있는 것도 아닌 제가 어째서?라고 처음에는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선생님 입장에서는 하급생들이 어느정도 따를만한 최고 권력을 가진 학생이 실행위원이여야 원활하게 일이 진행될 거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

솔직히 말해, 귀찮습니다만….
초등학생이라 실행위원이라고는 해도 그렇게 대단한 일을 시키지는 않지만요.
반별로 제출한, 경기에 나갈 학생이 적힌 종이를 정리한다든가, 선생님의 심부름꾼같은 사소한 일 뿐입니다.
그리고 당일에 실행 위원의 탠트에서 진행을 담당한다거나.


본격적인 운동회 준비를 시작하기 전에, 5학년, 6학년으로 구성된 실행위원들이 함께 모여서 첫인사를 나눴습니다.
실행위원들 중에는 엔죠 슈스케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여학생들이 긴장하고 있습니다. 설마 그 엔죠가 실행위원을 할 줄은 생각하지 못한 듯 모양이죠. 뭐, 저도 같지만요.
다른 위원들의 면면을 보아하니, 아마 엔죠도 저와 같은 이유로 발탁됐겠죠.
쁘띠 피브와느 멤버는, 저와 엔죠 정도입니다.
하지만 엔죠라면 저랑은 다르게 확실하게 거절할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의외로 협조성 있는 녀석이네요.
그러고보면 너 dolce 안에서도 황제와 주위를 조정하는 역할이었죠, 참.

실행위원들끼리 서로 자기소개를 하면서 실행위원회가 하는 일들의 개요 설명이 있은 뒤, 막 일을 시작하려던 참에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여자들이 엔죠의 여기저기를 둘러싸듯 앉아서 일을 하지 않는 겁니다.
엔죠 본인은 프린트를 인쇄하거나 부수별로 정리하면서 성실하게 일하고 있으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여자들은 엔죠에게 말만 걸뿐 전혀 손이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남자위원들의 주의를 받더라도, "엔죠 님을 돕고 있잖아!"라고 우기면서 오히려 "너희가 인기없다고 질투하는 거야?"라며 조롱을 받아 남자 아이들은 그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엔죠에게 주의를 받아서 일단은 시작하긴 했지만, 옆에서 떨어지는 일은 일절 거절하고 있습니다.
이거, 완전히 인선 미스네요.

그런 와중에도 저는 그런 소동에서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아서 묵묵히 프로그램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엔죠 때문에 일손이 부족해서 힘드네요.
프로그램 인쇄는 자체는 외주로 처리할 수 있지만, 어째선지 하나로 묶는 건 실행위원의 일로 돌아옵니다.
어차피 외주할 거면 끝까지 끝낸 걸 받으면 좋을텐데. 솜씨가 없네요.
종이가 손을 건조하게 만들어서 제대로 한장씩 잡을 수도 없게 됐습니다.
곤란하네요…. 골무가 있었으면 좋을텐데.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니, 골무는 없었지만, 고무줄이 있었습니다.
손가락 끝에 고무줄을 감았습니다.
종이를 집는다.
오오! 집기 쉬워요!
갑자기 일이 빨라졌습니다.
집어서 접고, 빼내는걸 기계처럼 반복합니다. 생활의 달인이 빙의한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작업을 진행합니다.
지나가던 남자애가 "엣, 고무줄?!"라고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신경 쓸 시간이 없습니다. 외관은 일단 뒷전, 효율을 중시하는 거에요.

그리고 여자아이들의 끊임없는 웃음소리가 울립니다. 일좀 하라구요.


그리고 나서도 실행위원의 여자들은 엔죠 주변에서만 움직이고 있어서, 거의 도움이 되지 안 됩니다.
다른 남자위원들은 벌써 포기한 모양입니다.
그만큼 이쪽으로 점점 잡무가 돌아옵니다.
다음 날부터는, 실모양의 골무도 준비했습니다. 어깨가 결림용 무취의 액체약도 완비!
완전히 사무 작업이 몸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복사기의 취급도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축소, 확대, 양면 복사, 뭐든지 가능하다구요?
6학년 남자위원장은 "역시 킷쇼우인 씨네"라고 치켜세우면서, 허드렛일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그런 뻔한 아부에 속을거같나요?!
그러나 거절할 수도 없어서, 복사한 프린트를 묶어 스테이플러로 찰칵, 찰칵, 찰칵.

어라? 이상하지 않아요?
전 분명 특권층인 피브와느의 멤버에다가, 여자들 중에서도 상위 카스트에 위치하고 있을텐데, 정신을 차려보니 제일 열심히 하고 있잖아요.
유능한 잡일꾼 레이카로 성장했나?
저쪽에 모여있는 여자애들이 해야 할 일을 통째로 떠넘겨지는 것 같은데.

정말─! 너희도 일하라구요!


잠시 뒤, 하급생들의 반에서 경기 참가 선수에 중복이 있어서 직접 그 반에 주의를 주러 가게 됐습니다.
이럴 때만큼은 피브와느의 위광을 등에 진 저와 엔죠가 가야 하지만, 엔죠가 움직이면 저 여자애들도 따라 움직여서, 괜히 복도가 복잡해질 것 같아서 저 혼자 가기로 했습니다.

문제의 3학년 클레스는 휴식 시간이었지만, 남자아이들이 좀처럼 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여기에 최근 실행위원의 스트레스 때문에 완전히 자신을 잃을 뻔 했습니다.

너희들, 이 저를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천하의 킷쇼우인 레이카 님이라고요!!

라고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진짜로 말할 용기는 전혀 없으니까요.
정말로─! 이녀석이고 저녀석이고 다 똑같아!
그나마 여학생들은 제 말을 잘 들어서 협력하려는 의지를 보였지만, 일부 남자들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뭐랄까, 거기 안듣는 너. 네가 중복 선수잖아! 이야기를 들어!

"그러니까, 이 두 경기에 모두 나갈 순 없어요. 한 쪽만 고르고, 나머지는 다른 학생에게 넘겨주세요."
"에──! 그럼 이길 수 없잖아!"

알까보냐, 이 멍청이.

"어쨌든 이 두 경기에 모두 나올 수는 없어요. 이 경기가 끝난 뒤에 바로 시작해서 너무 늦어진다구요."
"그럼 뛸께."
"그런 문제가 아니라구요."

뭔가요 이 바보는, 정말 서란의 학생이 맞나요?
전생의 국립 초등학교 남자애들이 떠오릅니다─.

"레이카 님의 말씀이니 좀 들으라구요!"
"엉? 모르겠는데."

어이, 지금 뭐라고요?
이걸 그냥 확!

그러다보니 저를 사이에 두고 여자 대 남자의 말싸움이 시작됐습니다.
아아, 이제 수습되지 않아요.

"네, 거기까지."

엔죠가 팡팡하고 손뼉을 부딪치며 교실로 들어섰습니다.

"카츠라기, 너무 킷쇼우인 씨를 곤란하게 하지 말라고? 됐으니까 빨리 중복 경기를 정정해."

악동 녀석이 엔죠를 알고 있는지 갑자기 고분고분히 말을 따랐습니다.
소란스럽던 클레스도 완전히 얌전해져, 여자들은 엔죠의 그 통솔력에 도취되고 있네요.
쳇─, 이게 진짜 카리스마랑 연기의 차이?

엔죠가 와서 순식간에 문제가 해결됐으므로, 우리는 그대로 실행위원들이 모인 교실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킷쇼우인 씨, 갈거면 말을 걸지 그랬어."
"엔죠 님 주변은 보기에도 사람이 몰려서 바쁘신 거 같아서요."

싫은 소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아─, 그거. 나도 곤란한데. 킷쇼우인 씨, 맡은 일 많지? 나도 도울께."

쓸데없는 것들이 달라붙으니까, 필요 없다구요.

"괜찮아요. 엔죠 님은 자신이 일을 끝내주시겠어요?"
"그래?"

교실로 돌아오니, 그 여자애들이 상전 보듯 몰려옵니다.

"엔죠 님, 저희들도 함께 가는게 좋았을텐데…."
"여기, 엔죠 님이 부탁하신 일, 끝났어요!"

저는 선배에게 정정받은 서류를 보여주고, 나머지 서류들을 정리해서 직원실로 가져갔습니다.

아아, 위안받을 만한게 부족한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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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허,견실을 모토로 살고 있습니다 - 32

원작 : http://ncode.syosetu.com/n4029bs/
번역 : silver lining(greenwi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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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20/06/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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