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ver lining's tapestry

2015년 11월 29일 일요일

겸허,견실을 모토로 살고 있습니다. #012.

제 12화.



3학년이 되었습니다.
서란 초등과에서는 3학년, 5학년으로 진급할 때마다 반이 바뀌게 되는데요.
봄방학동안 매일같이 기도한 덕분인지, 저는 무사히 황제와 다른 반으로 배정되었습니다.
저는 4분의 1의 확률의 도박에서 승리한 겁니다.

한편 오라버니께서는 중등과를 졸업하시고 고등과에 입학하셨습니다.
고교생이 된 뒤 전보다 더욱 바빠지신 듯, 예전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적습니다.
안타깝네요.

유리에 님과 아이라 님도 초등과를 졸업하시고 중등과로 진학하셨습니다.
중학교 교복을 입은 두 분은, 왠지 갑자기 어른스러워지셔서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차이를 느껴버리고 말았습니다.

싹이 튼 봄방학을 합쳐도 한 달 밖에 안 지났는데, 왜죠?
이것이 교복 매직인가요?
우음, 중등과 교복은 귀엽네요.

황제는 유리에 님과 교사에 살롱까지 떨어지게 되서 그런지 상당히 기분이 나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건드리지 않는 신은 액신이라도 해를 입히지 않는 법이라 그런지, 주변 분들은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조용히 있습니다.
그런 어두운 기운을 흘리고 있는 황제에게 태연히 말을 건넬 수 있는 건 엔죠 정도뿐입니다.
과연 엔죠. 저라면 절대로 말걸지 못했을 겁니다.

날이 갈수록 아름답게 성장해가는 유리에 님과의 차이를 느끼고 조급해하는 마음은 이해합니다.
어른이 되면 4살 차이는 그렇게 큰 차이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는 4살이란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으니까요.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3학년이라면 연애대상으로 보지도 않겠죠.

본인 또한 그것을 충분히 알고 있는지, 유리에 님의 곁에 남자가 다가가면 살기를 물결치며 무언의 위협을 가합니다.
유리에 님 쪽에서 보면 귀여운 남동생의 질투정도로 밖에 느끼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더 안타깝네요.
가끔 방과후에 중등과까지 마중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너무 갸륵하잖아요, 황제.



그리고 1학년 때부터 다니던 학원에는 서란 학생 몇명 새로 들어왔습니다.
서란은 에스컬레이터 식이라 별일이 없으면 아무 탈 없이 진급하므로 공부에 대한 위기감은 그다지 없습니다만.
거기에 대부분의 학생은 학원보다는 가정교사를 부르고요.
그래도 일부 남학생들은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두려워하던 일이 마침내 닥친 느낌입니다...

"킷쇼우인 씨도 이 학원에 왔었다니!"
3학년이 되어 같은 반이 된 서란의 아이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네, 그렇답니다."
"저기, 그 옆에 앉아도 좋을까?"
"…얼마든지요."

알아요, 아는사람이 전혀없는 곳에서 불안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낮익은 사람을 찾으면, 무심코 다가가고 싶어지는 마음.
든든하네,하고 안심이 되지요.
그러나 제게는, 정말 재미없는 전개입니다만.

"나 말고도 올해부터 등교한 녀석도 있지만, 요일이 달라서 말이지. 나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킷쇼우인 씨가 있을 줄은 몰랐어... 아, 킷쇼우인 씨도 올해부터?"
"아니요. 저는 1학년 때부터 다녔답니다."
"어, 그래?! 뜻밖이네. 킷쇼우인 씨는 그렇게 공부에 열중하는 타입은…아니, 음"

응, 딱히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답니다.
서란에서도 특별한 아가씨 그룹의 리더 역할을 맡고 있는 제가, 1학년 때부터 학원에 다닐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는 타입으로는 보이진 않겠지요.

"오라버니의 영향으로 저도 다녀 보고 싶어졌답니다?"

뭐, 이 정도가 무난한 대답이겠죠.
어느새 제게 브라콤이란 꼬리표가 붙어다니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아, 그렇구나. 그런데 이 학원은 좀 어때? 학교 수업보다 어려워?"
"글쎄요. 으음, 수준 높은 학교에서 오는 학생이 많아서요, 나름대로 어렵달까요?"
"그렇구나"

그 뒤에도 여러가지로 말을 걸어왔는데, 당연하게 저를 알고 있는 이 아이에 대해서는 점점 들을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어떻게 말해요, 네 이름은 뭐야? 라고요.

곤란한 겁니다.
이렇게나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이름을 모른다고 하면 상처받지 않을까요?
뭔가 힌트가 될 만한 것은…. 아, 그렇죠.

"이제 교과서와 문제집을 꺼내놓는 게 좋아요. 교과서의 내용은 확인하셨나요?"
"아, 그렇구나,"

뒤적뒤적 가방에서 국어 교과서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으으음, 문제집의 이름 란에는──

“아키사와 타쿠미”군이군요.
좋아, 외웠습니다.
사와인가 자와인가 헷갈리지만요.

"아키사와 군은 반 편성에서 몇 반이 되셨나요?"

자연스럽게, 저는 처음부터 당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어필인거에요!

어라, 킷쇼우인 씨, 내 이름 알고 있었어? 킷쇼우인 씨의 그룹에는 나같은 건 알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아, 나는 4반이야. 그리고 내 성 말이지만, 아키사와가 아니고 아키자와야."

…이름을 모른다고 생각했다면 먼저 밝히라구요.

저는 같은 반인데 이름도 모른다니 상처받지 않을까, 여러가지로 생각했다구요?!
이 아이, 덜렁이?

그 와중에 수업이 시작됐기에, 수다는 끝.
초등 3학년의 수업 내용치고는 조금 수준이 높지만, 지금까지는 아직 여유입니다.
옆에 있는 아키사와 군, 아니 자와 군도 긴장했던 것 같지만, 열심히 수업을 듣고 문제집을 풀고 있습니다.

그리고 쉬는 시간.

"아, 긴장했다! 우리 학교보다 진도가 빠르네."

아키자와 군은 기지개를 피며 당연하게 말을 건어왔습니다.

…이럴 줄 알았습니다~.

제가 꺼리던 게 바로 이거인 겁니다.
서란의 학생이 들어오면, 반드시 같은 학원의 저를 주목하는 겁니다. 그리고 제 행동에 무심코 눈이 가는 거죠.
아키자와 군처럼 말을 걸어오는 아이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까지 첫 대면으로 친근하게 대해오는 아이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요...

하지만 이렇게 되면 제 본래 목적, 편의점에는 갈 수 없게 되는 거에요!!
아~, 역시 이렇게 되는 걸까요….

"그렇지요? 그 대신 학원 수업은 편해지지만요."
"그렇구나. 킷쇼우인 씨는 성적 좋았구나.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이 아이, 역시 덜렁이군요. 입이 너무 잘 미끄러지시네요.

"저 그렇게나 불성실하게 보여요?"

놓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뭐랄까, 공부에 집착해야 하는 사람들이랑은 사는 세계가 다르달까? 킷쇼우인 씨 주변의 아이들도 그런 느낌이고. 게다가 그 피우오와ー느잖아."

하긴, 확실히 그렇지만요!
저는 이 학년 중에서도 가문이 강한 부류에 들어가기도 하고, 전통을 존중하는 학원에서는 화족의 피를 이은 가문은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제 주변에도 그런 여자아이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여자 그룹 중에서도 가장 위압감 있는 그룹을 만들어 버렸으니까요...
모두 친구라기보다는 추종자라는 느낌이라는 게 조금 안타깝지만.
'레이카 님'이 아니라 '레이카 양'이라고 불러주면 좋을 텐데 그쵸?
저는 그 학원에 친구가 있는지 모르겠는 거에요….

"솔직히 의외였어! 킷쇼우인 씨는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에 나 따위는 상대도 안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설마 이렇게 상냥할 줄은."

반갑게 아키자와 군이 웃습니다.

응, 역시 저는 다가오기 어려운 거군요.

"다음 주도, 옆자리에 앉아도 될까?"

그렇다면 어차피 편의점에는 당분간 가지 못하겠군요.
더군다나 이렇게 벽을 만들지 않고 말을 걸어주는 아이도 흔치않고요.

"예, 물론이죠."

아키자와 군은, 제 친구가 되어줄까요?

겸허,견실을 모토로 살고 있습니다. #011.

제 11화.


내겐 7살 어린 여동생이 있다.
그런데, 요새 여동생의 모습이 조금 이상해졌다.


여동생은 응석을 받아주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 제멋대로에 건방진 아이였다.
사고나 취향도 항상 함께 있는 어머니의 영향을 잔뜩 받아서 완전히 어머니의 축소판처럼 자라버려서, 미래에는 내가 다니는 학원에서 많이 보이는 상류계급의 도도한 영예가 되겠지,하고 조금 차가운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물론 나는 부모님을 존경하고 가족으로서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부모님들의 아랫사람을 깔보는 시각은 도저히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킷쇼우인의 회사를 지탱하는 건 그런 사람들이지만.
나는 장남이라 머잖아 이 집과 회사를 잇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때는 아버지의 방식과 맞서게 될지도 모르겠군.

그럼 다시 여동생의 이야기다.
어머니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동생이 초등과에 들어가더니 갑자기 달라졌다.
뭐랄까, 좋은 의미로 바보가 됐달까?
아니면 순진해졌다고 말하는 게 좋으려나?
그리고 뭔가 혼자서 중얼중얼 거리는 게 많아졌다.

성적도 나쁘지 않다. 전에는 온통 제멋대로에, 가끔은 가지 않으려고도 하던 과외도 성실하고 열심히 다니고 있다.
6살 주제에 도리를 따질 줄 아는 태도도 보이고, 가끔 아이답지 않은 어려운 걸 말하기도 한다.
그런 점만 보면 아주 뛰어난 아이겠지.
그러나 가끔, 때때로 이상한 행동을 하는데 그게 조금 재미있다.
최근 내 취미는 그런 여동생을 관찰하는 것이다.


여동생은 예전부터 나를 잘 따르고 있었는데, 요즘은 그 정도가 더 강해졌다.
나를 보면 기쁜 얼굴로 달려오곤 한다. 왠지 강아지 같달까.
보이지 않는 꼬리를 흔들흔들 흔들고 있는 느낌이다.
이 정도로 솔직한 호의를 받으면 친동생이기도 하고, 역시 귀엽달까?
거기서 더 상냥하게 대해주면, 더 호의를 붙여온다.
소파에 앉을 때면 내 옆이 지정석이라도 되는 것처럼 앉는다.


그런 여동생이 어느 날 학원에 다니겠다고 말했다. 
가정교사가 아니라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왠지 수상쩍은 이유가 느껴지지만..
그래도 열정이 전해저서 조금 받쳐주니, 아주 밝은 미소로 감사 인사를 받았다.
조금 장난치고 싶어져서 이유를 물어보면 아니나 다를까 시선을 피했다.

역시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모양이지? 뭔지는 몰라도 괜찮겠지만.
눈의 위치를 보고 거짓말을 눈치챘다고 말하니 그대로, 알기쉽게 굳어졌다.


역시 이런 여동생의 반응은 재미있다.


입을 벌린 채 굳어진 여동생은 멍한 표정의 인형처럼 보여서 무심코 웃어버렸다.
다음부터는 또 인형으로 변신하면 벌어진 입에 사탕이라도 넣어보자.

그리고 눈이 오른쪽 위를 향했던 건 정말이지만, 그 이외에도 여동생에게는 거짓말을 할 때면 자신도 모르게 나와버리는 버릇이 있었다.
여동생이 뭔가를 웃으면서 넘기려 할 때면, 보조개가 삐죽삐죽 움직이거든.
이건 최근 나를 더 잘 따르게 된 여동생과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 찾은 버릇이다.

그런 버릇을 여동생은 전혀 모르지만.
래도 가르쳐 줄 생각은 없다.
냐하면 그 쪽이 재밌잖아?


여름 여행에서는 지금까지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피부가 타는 걸 싫어해서 바다에 들어가지 않던 여동생이 제일 먼저 바다로 뛰어갔다.
수영 학원에 다니던 성과를 보이고 싶었는지, 열심히 헤엄쳤지만 얼마 못가서 빠졌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만만했었는지 의아해질 정도로, 인공호흡 교본에 나올 것같은 자세로.

대체 뭘 하는 걸까, 내 여동생은. 

그 후 걱정으로 계속 지켜보고 있으니 내 등에 올라타서 편하게 수영한다는 기술을 발명했다.
이쪽저쪽으로 가라고 내 등에서 잘난듯이 지시를 내려서 가끔 일부러 파도를 뒤집어쓰도록 몸을 가라앉혀 보았다.
파도를 뒤집어써서 켁켁거리는 동생이 바보같아서 재밌었다.
미안, 못 봤다고 사과하면, 오라버니 탓이 아니에요, 파도가 나빠요! 라고 했다.
바보같은 아이일수록 더 귀엽다는 말은 정말이었구나...

작년까지는 거의 바다에 들어가지 않던 동생인데 올해는 바다에서만 놀았기 때문에, 많이 탔다.
나중에 어머니께 혼날 것 같아서 자외선 차단 크림을 꼼꼼히 새로 바르라고 했지만, 웅, 응,하고 적당히 대답하고 다시 바다에 들어갔다.
아니나다를까 검게 그을린 여동생을 보고 어머니는 충격을 받으셨고, 그런 어머니를 보며 여동생은 갈팡질팡했다.
그러니까 말했는데. 바보구나.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부모님께서는 부재시라 피아노실에 가보면 동생이 뭐가 그리 재밌는지 유난히 즐겁게 '고양이를 밟았네'를 연주했다.
밟았다~라며 엉뚱한 가사까지 붙이면서 몸을 흔들흔들, 리듬을 타면서 노래를 불렀다.

지만 저녁시간에 어머니께서 오늘은 뭘 했는지 물으셨더니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었어요. 발표회의 과제 곡이랍니다,"라고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 마! 네가 쳤던 건 '고양이를 밟았네'지?!
언제부터 피아노 발표회 곡이 변한건데!

동생은 혼자 있으면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굉장히 수상하다.


발렌타인 데이에는 내가 받아 온 초콜릿을 세는데 바빴다.
단체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지만 절대로 싫으니까?
나를 보며 히죽히죽 하고 있는게, 조금 기분 나빴다.
여동생에게도 직접 만든 초코렛을 받았지만 학년말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먹는 건 조금 망설여졌다.
가정부가 도와줬으니 괜찮다고 우겨서 각오를 다지고 먹어 봤지만…

…맛이 나지 않았다.
맛이 아예 없는 초콜릿은 대체 뭘까...
여동생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내 소감을 기다렸다. '일단 맛있네, 고마워'라고 말했다.

설마 내년에도 직접 만드려는 걸까... 내년에는 학교별 고사도 있으니까, 어떻게든 피할 수 있을 수단을 생각해보자.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그것이려나.
어느날 밤에 잠에서 깨서 물을 가지러 갔을 때.
여동생의 살짝 열린 방문 안으로부터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그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침대의 라이트만 켜진 방에서 침대와 옷장 사이의 바닥에 앉아 등을 돌리고서 여동생이 섬뜩한 웃음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요괴?라고 생각할 뻔했다.

내가 보고 있는 걸 모르는지 여동생은 중얼중얼하고 뭔가 중얼중얼거리면서 웃고 있었다.
무서워서 그대로 살그머니 문을 닫고,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여동생은 뭔가 이상한 것에라도 홀려있는 걸까.

당분간 여동생을 자세히 지켜보자...
그리고 밤중에는 절대로 여동생 방에 접근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여동생의 이상한 행동을 지켜보는 건 역시 재밌다.

겸허,견실을 모토로 살고 있습니다. #010.

제 10화.


방학이 끝나는 2학기가 되어 저는 염원하던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제 오라버니께서 다녔을 정도의 학원이라, 사립, 국립 진학교의 초등학생이 모이는 꽤 수준 높은 학원입니다.
제가 전생에 다녔던, 프린트로 수업하던 학원과는 전혀 다르네요….

아직은 국어와 산수만 하고 있지만, 수업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 없습니다. 오히려 전능감이 대단합니다.
그렇지만, 어차피 초등학교 1학년 수준. 모르면 그게 문제겠죠...
그리고 제가 학원에 가고 싶었던 것은 장래의 일에 대비하려는 생각도 물론 있었지만, 또 하나의 중대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군것질!


몇가지, 교양 교육을 쌓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킷쇼우인 가의 기사가 배웅과 마중을 나옵니다.
수업 시작 전에 먼저 교실까지 보내주고, 끝나면 다시 교실 앞으로 마중나와 주는 겁니다.

그래요, 이래선 도무지 자유로운 시간이 없는 겁니다!
제가 혼자서 밖을 걷는 것은 없고. 반드시 누군가 곁에 있습니다.
지만 그럼 곤란한 겁니다.

왜냐하면, 군것질 못하니까.

걸신이 들렸다고 웃고 싶다면 웃어요.
하지만, 하지만요! 매일매일 주어지는 과자는 고급 과자점의 물건 뿐이고 식사도 어딘가의 일류 레스토랑에서 나올 것같은 메뉴만 있다구요!
감사하죠? 정말 맛있어요?
물론 그렇지만 그래도 전생의 저의 혀는 정크 푸드를 먹고싶다고 바라고 있는 겁니다! 쌀밥에 야채절임 반찬의 조촐한 식사를 바라고 있는 거에요. 부식으로 빵을 먹고 싶다고 바라고 있다구요!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종자없는 시간대에 수업을 들으면 되겠지-라고요.
학원은 국어·수학의 2시간 제에 그 사이 쉬는 시간이 있는 겁니다.
그 때에 몰래 사러가면 되는 겁니다.

능하면 학원 근처에 편의점이 있으면 좋습니다.
자주 벗어나면 학원 선생님의 검문을 받아서 집에 보고될지도 모르니까 거기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구요.
살 수 있는건 학원 교재를 넣는 가방에 들어갈 정도의 작은 것들뿐. 절대로 감자칩 계열의 거물을 노려서는 안 되는 거에요. 그런건 작은 봉지라도 안에 공기가 있어서 크니까요.
처음에는 티롤리언 초콜릿같은 작은 물건을 사보죠. 가능하면 대나무 마을을 먹고 싶지만요. 사실은 럭키 턴도 먹고싶지만, 그건 역시 장벽이 높습니다.
그리고 언젠가,주먹밥을!

그런 일을 상상하고 있으면 멈출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그래서 어떻게든 학원에 가고 싶었던 겁니다. 

오라버님이 다니던 학원 옆에는 걸어서 2,3분 거리에 편의점이 있었습니다.
멋지군요!
물론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직후에는, 신입인데다, 그것도 저 서란의 학생이라 주위로부터 주목되고 있었으므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일주일에 1번 정도로 학원의 눈을 피해 편의점에 갈 수 있게 된 건 다닌지 2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죠 ─ ─.


처음 샀던 과자는 티롤리언 초코 2개와 캐러멜.
가방을 가지고 갈 수 없어서 주머니에 들어가는 크기에 한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쉬는 시간은 15분밖에 없습니다. 저는 서둘러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물론 2교시 수업은 전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지요.

집에 돌아와 방에서 몰래 먹은 티롤리언 초콜렛은, 그 그리운 맛에 감동해서 울고 말았습니다.
머지 초콜릿들과, 8개들이의 카라멜도 소중하게 먹었습니다.

정크 푸드 만세인 거에요.




가을은 운동회와 서란 발표회 등이 있어 바쁩니다. 사적인 걸로는 피아노 발표회까지 있습니다. 눈이 부시네요.
운동회는 이 학년에서는 카부라기, 엔죠의 투톱이 당연하게 대활약 했습니다. 상급생들조차 압도. 덕분에 상급생들을 포함해, 팬들이 더욱 늘어났습니다.
안타깝게도, 저희 반에는 영웅은 없었습니다. 다른 분야로 힘내죠.

서란 발표회는 문화제 같은 것으로, 학생들이 만든 작품 등을 장식하는 것 뿐만아니라 합창 콩쿨과 바자회 등도 있습니다.
운동회보다 이쪽이 준비가 힘들어서 지친 몸의 영양 공급을 위해 중간에 프티 피브와느의 살롱에서 과자를 먹고 있었습니다.
교내에서 과자를 먹을 수 있다니, 역시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의 살롱은 발표회의 합창 곡목과 학급마다 만드는 작품의 이야기 등으로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반 작품은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난이도가 오르기 때문에 큰일입니다. 고학년은 디오라마를 만든다고 합니다.

"레이카 씨, 오늘은 피에르 에우아은의 마카롱이 있는데. 드시겠어요?"
"기뻐요. 감사히 받을께요 "

이 분은 5학년의 언니로, 미나즈키 아이라 님.
서란에는 찾아보기 힘든 키크고 조금 보이시한 외모의 여자시고, 장래 어딘가의 극단 여배우가 되어 남자 역할로 톱이 될것같은 사람이십니다.

아이라 님은 지난 여름 파티에서 저와 오라버님의 왈츠를 보신 뒤부터 친하게 지내주시고 계십니다.
즐겁고 열심히 춤추던 모습이 예쁘다고요. 감사합니다.

"착한 오빠를 둬서 부럽구나"라고 말하시며 어디선가 저와 오라버님이 장미 아치의 벨을 울리고 있는 사진을 입수하셔서 선물받았습니다.
아이라 언니의 지인 분이 그 자리에 있어서 사진을 찍었다고 하시네요.
"귀여운 커플이라 사진을 찍어 나중에 전해 주고 싶었어" 라고요.
커플 결정인거에요, 오라버님.
카부라기 마사야와 엔죠 슈스케의 앞에서 쓸데없이 망신을 당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인생이란 새옹지마랍니다.

─ ─ 그러나 아이라 님에게는 한가지 중대한 문제가 있는데요. 그것은……

"유리에 양. 이 한정 마카롱 맛있네요."

그래요, 아이라 님은 저 유리에 님의 친구분인 겁니다.

"그렇지? 그럼 하나만 더 먹을까? 마사야와 슈스케도 먹을래?"

"먹을께."
"음, 저도요."

유리에 씨의 곁에는 보통, 아니 항상 유리에 씨 LOVE인 카부라기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유리에 씨와 아이라 님은 단짝이십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라 님이 최근 아끼시는 후배가 저.

꽤 위험한 입장인 거에요.

황제께서는 흥미가 있는 사람 이외에는 기본적으로 거의 외면하니까 저는 아직 시아에 없는 거지만요.
단지 한번 엔죠 슈스케가 "아, 그 여름파티의 한복판에서 왈츠를 추던 아이구나."하고 말했을 때,"아아…쟤가?" 라고 떠올린 듯이 이쪽을 본 적이 있었지만요.

엔죠 슈스케, 쓸데없는 짓을!

"마사야는 제대로 반 발표를 돕고 있지?"
"…뭐 적당히."
"그러면 안 돼, 제대로. 잘 하렴?"
"하아...응"
"뭐야, 그 대답은. 교실까지 보러 가니까? 알았지?"
"알았어. 정말 유리에는 잔소리가 많다니까.."
"뭐라고요!"
"거짓말이야, 미안해. 유리에는 바로 화낸다니까?"

마카롱을 우물우물 먹으면서 몰래 살짝 보았습니다.
튕기는 것 치고 흐뭇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있으라고요, 그렇게. 그렇게 좋아하는 거군요?
황제는 유리에 씨와 수다떨고 있을 때는 얼굴이 전혀 다른 겁니다. 무료했던 표정이 거짓말처럼 풍부해지는 겁니다.
아 아, 뺨이 좀 빨개지고 있어요. 넘치는 연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거군요!

그렇게 보기드문 재미있는 황제의 모습을 관찰하다 보면 엔죠와 눈이 마주쳐 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제 보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러브러브의 도청은 합니다. 


뭐 그런 일상을 보내면서 바쁘지만 평온하게 가을을 넘겼습니다.

겸허,견실을 모토로 살고 있습니다. #009.

제 9화.

약속한 1곡이 끝나고 하아~즐거웠다,라고 주위를 둘러보면, 이쪽을 보고 있던 인물과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저는 돌이 되어 버렸습니다.

쇼크에 다리가 꼬여서 쓰러질 뻔한 것을 오라버님께서 순간적으로 도와주셨지만, 그런 것보다-

어째서 카부라기 마사야가 여기에 있는 건가요---!!


여름방학 동안은 지중해에서 보낸다던, 일본에 있을 리 없는 카부라기 마사야와 엔죠 슈스케가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 ─.

언제부터 있었습니까, 어디부터 봤어요!
당신들은 지중해에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일본에 없으니 파티에도 불참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안심하고 선배 분들과 함께 춤춘다는 눈에 띄는 행동도 할 수 있었던 건데..!
온 걸 알았다면 절대 이런 눈에 띄는 것 하지 않았습니다!

"레이카?"

평상심, 평상심.
있을 리가 없을 인간이 있는 이유는 일단 미뤄두고, 지금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자연스럽게 이탈하느냐-입니다.
우선은 눈을 감고 저 석화 마안의 저주를 푸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꺄아!! 눈만 돌리려 했는데 목이 마음대로 휙 돌아가버렸어요!
이래서는 정말 고자세로, 흥! 하고 외면하는 같잖아요. 싸움을 걸었다고 생각하면 어쩌죠?!
..어쩔 수 없습니다. 해버린 일은 어쩔 수 없죠. 그냥 자연스럽게 이 자리를 떠나기로 하죠.


꺄앗!! 무릎이 굽혀지지 않아요! 저 군인처럼 되버렸어요!
마안에 뇌까지 공격당했는지, 직각의 운동이 멈추지 않습니다..
아, 정말로 어떻게 해야 하죠, 저!

"레이카, 듣고 있니? 레이카 ―"

어쨌든 사람들에게 섞여서 자취를 감추도록 하죠. 가장 사람이 많은 드링크 코너로 직행하기로 하죠.
전 딱히 당신의 일이 신경쓰여서 도망가는 게 아니라구요? 춤을 춰서 갈증이 생겼을 뿐, 물을 마시려는 거니까요?
예예, 그것뿐인 겁니다.
거기에 계신 당신, 달콤한 주스를 주지 않으시겠어요?

"레이카!"

팡 하고 등을 두드려져서, 혼란의 저주가 풀렸습니다.
아, 방금 저 분명히 이상해졌었습니다.
오라버님, 제정신으로 되돌려줘서 감사합니다.
석화와 혼란의 저주를 한꺼번에 걸다니, 역시 최종보스답네요.

"왜 그래,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오라버니,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겠습니다."

혼자 정신을 리부트하고 오겠습니다.
화장실에 틀어박혀서 침착해져서 올께요.
여러가지로 반성하는 건 그 다음입니다.

"괜찮아? 상태가 안 좋니? 누군가 함께 가줄 사람이.."
"아니, 괜찮아요."
"그래도.."

저는 상당히 거동이 수상했던 모양이군요. 오라버니께서 엄청나게 걱정하시고 계십니다.
죄송해요, 걱정을 끼쳐 버렸네요.

"오, 타카테루."
"이마리."

마침 오라버님의 친구 분께서 말을 걸어 오셨으니, 이틈에 빨리 도망치기로 하죠.

"처음 뵙겠습니다, 여동생인 레이카에요. 오라버니, 혼자서 괜찮으니까 잠깐 다녀올게요."

그 친구분께 꾸벅 인사하고 종종걸음치며 회장 밖으로 GO!

"여동생 양, 왜 저러니? 서두르는거 같은데."
"아, 화장실 간대."


그런 건 말하는 게 아니라구요!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 개인 룸으로 들어가서 힘없이 주저앉았습니다.
후--!
한꺼번에 피로가 몰려옵니다.
조금 전까지의 하이텐션이 거짓말 같아요.

정말이지, 깜짝 놀랐습니다.
왜 있는 거죠. 그 사람들. 
방학동안은 계속 지중해에 있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이었을까요?
프티 피우오와ー느의 소문에서도, 두 사람은 여름파티에 불참한다고 했었는데.
그러나 저 얼굴.
두려웠습니다..
들뜬 채로 왈츠를 추고 있던 저를, 이놈은 뭐야?-라는 눈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분명 철없는 여자라고 절대로 생각했겠지요!
오는 걸 알았으면 혼자서 흥에 겨워 왈츠를 출 일도 없었을텐데!



"저기, 마사야님이 계시던데. 이번에는 불참 아니었나?"

그렇게 어쩌지~하고 혼자서 깊이 생각하고 있으면 문 너머에서 저보다 꽤 연상인 듯한 목소리들이 들려왔습니다.
중등과나 고등과의 멤버일까요?

"그래, 사실은 방학 내내 해외에서 보낼 예정이었던 것 같은데, 유리에 씨의 생일이 있어서 맞춰서 돌아온 것 같더라고."
"어머, 그랬구나. 내 동생이 마사야님이 왔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어. 하지만 유리에 씨가 상대라면 승산은 없겠지."
"후훗. 아직 모르잖아? 여동생인데 응원해야줘야지. 경쟁자도 많아 보이던데?"
"그렇지. 어머! 마이카 씨, 평안하셨나요?"
"평안하셨나요."

다른 지인이 들어왔는지 거기서 수다는 중단됐지만 이걸로 수수께끼가 풀렸습니다.
유리에 님의 생일 때문이군요!

저희보다 4살 연상의 스스시노 유리에 씨는 황제와 엔죠의 소꿉친구이며, 무려 황제의 '첫사랑의 그녀'입니다.
『 너는 나의 dolce』 안에서의 유리에 씨는 늠름하고 눈부신 미인에 학원생 모두가 동경하는 여성입니다.
킷쇼우인 레이카도 동경하고 있었죠.
소설 속의 레이카도 올곧은 유리에 씨를 동경하고 있었으면 조금은 거기서 배우면 좋았을텐데요. 하지만, 악역 캐릭터라서 어쩔 수 없었을까요? 이렇게 생각하면 레이카가 불쌍합니다….

뭐, 그 레이카가 저지만요.

그 유리에 씨와의 사랑은, 황제는 고등과에 진학할 때까지 좋아했었지만, 안타깝게도 유리에 님은 예전부터 나이어린 동생으로밖에 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사랑이 무너지고, 주인공에게 화풀이하는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주인공에 대한 관심이 사랑으로 바뀌고 첫사랑을 완전히 떨쳐버리게 되지만요.

그래도 어쨌든 죽마고우이자 누나같은 유리에 씨는 황제에게 특별한 존재여서, 자립심이 넘치는 유리에 씨가 대학졸업 뒤에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외국 기업에 멋대로 취업해 독립하려 했을 때 그 부모님들을 설득하는 데 힘을 빌려주게 됩니다.

유리에 씨가 독립할 때에는 "무슨 일이 있으면 즉시 연락해. 어디에 있던지 내가 절대로 유리에를 도우러 갈 테니까."라고 말해서 끝까지 특별한 사람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를 정도죠. 그것을 보고 주인공은 "속으로는 아직 유리에 씨를 좋아하잖아요."하고 불안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런 유리에 씨의 생일이 있다면 그야 무슨 일이 있든지 돌아오겠죠. 납득했습니다.
프티 피우오와ー느의 살롱에서도 유리에 씨와 말하고 있었을 때는 웃는 얼굴이었구요.
유리에, 유리에 하면서 열심히 관심을 끌려고 노력중인 거였군요.
첫사랑이라, 새콤달콤하네요. 하지만 그 사랑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아 애처롭기 그지없습니다.

두 사람의 그런 대화를 들키지않도록 몰래 관찰하며 남의 사랑이야기에 히죽히죽, 두근두근하며 즐거워하고 있는 저는, 어쩌면 성격이 나쁜 걸까요?

어쨌든, 있을 리 없는 카부라기와 엔죠 콤비가 파티에 있었던 이유는 이것이군요.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법.
왈츠를 추던 모습을 들킨 과거는 돌아오지 않는 겁니다.…
… 잊죠.
이 일은 흑역사로서 마음의 늪에 가라앉치도록 합시다. 그렇게 해요.

"으쌰"

자, 이제 오라버니께서도 걱정하고 있을 테니 돌아가지요.
화장실에 오래 있어 버렸는데, 처녀에게 불명예스러운 누명이 씨워졌으면 어쩌죠. 
제 상태는 만전이라고 어필해야 할지도요..?

겸허,견실을 모토로 살고 있습니다. #008.

제 8화.


여름파티가 이루어질 장소에는 이미 사람이 꽤 모여 있었습니다.

"와아~"

감동을 받아 바보같이 멍청한 소리를 흘리고 말았습니다.

언니 분들의 형형색색의 드레스가 행사장에 넘치듯 둥둥 떠다니시는데 그것이 여기저기에 장식되어 있는 생생한 커다란 꽃들과 어우러져 마치 꽃 바다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정장을 입은 오라버님들도 물론 언니님들에게는 못 미치기는 하지만 화려하고 멋지시네요.
이것이 바로 피브와느의 환상적인 여름 파티.
모든 분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보여요!

사실 게스트의 대부분이 서란 학원의 재학생이기 때문에 분위기에서도 젊음이 느껴지구요.
지금까지 킷쇼우인 가의 영예로서 가끔 파티에 나갔던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 파티들의 메인은 상류 계급의 이모부님, 이모님들의 파티라서, 정신적으로 피로해지기만 하고 그렇게 즐겁진 않았던 겁니다.

저는 아직 어리기에, 가급적이면 사양하도록 하고 있기도 하구요.
부모님께서는 데려가고 싶으신 것 같지만요.

"레이카? 괜찮아?"
어머, 어머. 저도 참 입이 벌어져 있었나요. 벗겨질 뻔한 가면을 황급히 고쳐씁니다.

"괜찮아요, 오라버님. 그래도 옆에 있어 주시겠나요."
원래는 상대의 팔에 사뿐히 올려야 하겠지만 저는 손에 단단히 힘을 주었습니다. 자켓 옷깃이 구겨졌다면 미안해요.
그렇지만 방심하시면 순식간에 분위기에 휩쓸려 미아가 될 자신이 있다구요?

"봐요, 오라버님. 모두 반짝반짝해서 눈부십니다."
"단순히 샹들리에의 반사광 때문이 아닐까? 라이팅을 계산한 덕분이겠지."

소녀의 꿈에 찬물을 끼얹지 마세요.


파티가 시작되고, 음료 잔을 손에 각각 들고 담소를 나누기 시작하시기에 저는 곧 오라버님께 장미의 아치를 보러 가자고 졸랐습니다.

"꼭 해가 떨어지기 전에 보고 싶어요! 오라버니께서 추천해주셨잖아요?"
"그래그래."

오라버니께 에스코트되어 테라스로 나오면 작은 하얀 분수와 테이블로 셋팅된 서양식 정원 속에 그것이 있었습니다, 장미의 아치!
생각보다도 더 귀엽습니다!
붉은 장미로 만들어진 아치에는 흰 쉬폰의 리본이 묶여 있어서 바람에 흔들리는데 꼭 웨딩 베일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꼭대기에는 벨이!
치고 싶어!

"오라버님! 혹시 이 벨은 울리면 행복해진다는 그 벨인가요?!"
"글쎄, 들은 적은 없지만 ─ ─ 울려보고 싶구나?"
"읏."

이런 귀여운 벨이 있으면 누구라도 울려보고 싶어지는게 당연하죠!
그렇지만 안 될까요. 주변에 사람도 많고.
서민처럼 보일까요?

"와보렴."

오라버님께서 제 손을 끌고 아치 앞까지 데려다 주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여동생이 종을 울려보고 싶어하는데, 괜찮을까요?"

오라버니께서 아치의 가장 가까이에 계시던 선배님께 말을 거셨습니다.
배는 선뜻 자리를 양보해 주셨고 오라버니께서는 제게 "자 어서."라는 식으로 재촉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주목받는 상황에 울리는 건 용기가-!
오라버니, 대담하시네요.

그래도 모처럼의 기회인데 다른 분들의 호의를 거절하기도 그렇고, 울려 볼까요?
혼자서는 역시 부끄러우니까 오라버니께서도 함께.
오라버니는 미묘한 얼굴을 하고 계셨지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둘이서 딸랑딸랑하고 벨을 울리면,"어머나, 꼭 결혼식의 신랑 신부 같네요"라고 들려서, 오라버님은 더욱 미묘한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신경쓰지 않으니까요?

제가 들떠서 벨을 울리고 있는 것을 초등과의 여자들이 보았는지 자신들도 울려 보겠다고 찾아옵니다.
그렇죠, 그렇죠.
사실은 모두 울리고 싶었을게 틀림없는 겁니다. 제가 맨 먼저 창피를 당한 덕분이군요!
좋은 일 했어요.

장미의 아치를 즐기고 실내로 돌아오면 그곳에서는 중앙에서 왈츠를 추는 사람들이 계셨습니다!
파티! 왈츠!

"오라버님."

뭔가 눈치를 살피던 오라버님은 제 시선을 피하시더니 뷔페 코너에 가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라버니의 팔을 잡고 있는 저는 움직이지 않아요.

"오라버니, 왈츠예요."
"싫어"

즉답인가요?

저는 상류 계급의 소양으로서 사교 춤도 배웠습니다.
오라버니께서도 지금은 배우지 않는 것 같았지만, 물론 과거에 배우셨겠지요.
모처럼 배웠는데 활용할 기회가 없으면 아쉽잖아요? 지금이 기회랍니다.
장미 아치의 벨을 울린 뒤의 저는 이상하게 텐션 높은 상태인 것 같습니다.
평소 같으면 부끄러워서 스스로 춤추러 나간다니 생각하지 않을 텐데 오라버님도 운이 없네요.

"오라버니, 1곡 만이에요. 네?"
귀여운 여동생의 추억 만들기를 도와주시겠어요?

"하아…"
오라버니께서는 크게 한숨을 내쉬시고는 푹 고개를 숙이셨습니다.
"1곡 만이야,"

이겼다!


홀에는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왈츠가 흐릅니다.
하나, 둘.. 하나, 둘 셋.
허리를 펴고-, 팔을 낮추지 말 것-, 좋아요! 하나, 둘,. 하나, 둘, 셋.

선생님의 레슨을 떠올리며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천장의 샹들리에가 반짝반짝 빛나고. 마음에 드었던 드레스 자락이 춤을 추며 펼쳐집니다.


아, 정말로 꿈처럼 즐겁습니다.

Announcement

Last Updated: 20/06/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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