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ver lining's tapestry

2015년 12월 2일 수요일

겸허,견실을 모토로 살고 있습니다. #015.

제 15화.



가을은 여느때처럼 운동회와 학습 발표회로 바빴지만, 운동회에서는 릴레이 경주에서 마지막 순번이었던 황제가 꼴찌에서 선두주자로 골인한다는 말도 안되는 위업을 달성하는 바람의 여자들의 환성으로 큰 소동이 되었습니다.

"릴레이는 아쉬웠네요. 아키자와 군의 반."

아키자와 군의 반은 황제에게 추월당하기 전까지 1위였었던 겁니다.
게다가 아키자와 군이 마지막 주자였는데요.

"카부라기 군이 상대니까 어쩔 수 없지 뭐. 엔죠가 나왔으면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아키자와 군은 엔죠와 같은 반이랍니다.
요전 날 엔죠는 운동회 전에 다리에 부상을 입어 릴레이를 비롯한 중요한 경기에 참가하지 못했다고요.

"하지만 마지막 주자였고, 아키자와 군은 발이 빠르시네요. 그러고보면 분명 작년에도 릴레이 레이스에 나가셨었죠?"
"마지막 주자 역은 엔죠 군 대신이지만. 뭐, 달리는 건 싫어하지 않아. 중등과에 가면 육상부에 들어가고 싶을 정도니까."
"그런가요."

저는 중등과에 올라간 뒤의 일까지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요.
애시당초 전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으니까. 굳이 말하자면 과자 군것질 정도?
……스스로 생각해도 심하네요, 이건.

"킷쇼우인 씨는 공 넣기 게임에 나갔지?"
"네, 1위였답니다."

그러고보면 공 던지기 경기에는 다리를 다쳤어도 상관없다면서 엔죠가 출전했으나 엔죠와 같은 반이던 여자애들이 엔죠의 옆에 있으려는 또다른 경기를 해버려서 아키자와 군의 반은 순위가 나빴었죠.

저는 다른 반의 그런 소동에도 빨리 공을 줍고 던지기를 반복해서, 공 넣기 게임 머신으로 변신했었지만요…….
운동신경이 좋지 않은 저는 다른 경기에서는 반에 거의 기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적어도 공 던지기 게임만큼은 노력하고 싶었던 겁니다.
1위 해서 만족만족이랍니다!

"운동회가 끝나고 한동안 카부라기 군의 교실에 여자들이 밀어닥쳐서 대단한 소동이었지. 결국 마지막에는 카부라기 군이 화내버렸지만."
"그랬군요."

그래도 그 소란은 매년 있으니까요.
평소에도 카부라기 마사야의 주변에는 온통 여자아이들이 떠들고 있지만, 운동회 등의 이벤트 뒤엔 그 규모가 더욱 커집니다.
매년 노발대발하느니 차라리 적당히 말해두면 좋을텐데. 소녀의 연정은 말릴 수 없는 걸까요.

"발렌타인 데이에도 매년 큰일이니까요."
"확실히 그건 굉장했지! 복도에 초콜릿을 든 여자애들이 줄이 생긴데다, 책상 위엔 초콜릿이 수북했었지. 대단하네~. 나는 엄마랑 언니랑 소꿉친구만 주던데."
"저도 아버님과 오라버니한테만 드렸지만요."

저는 2년 전부터 발렌타인 데이에는 아버님과 오라버니에게 손수 만든 초콜릿을 드리고 있습니다.
올해는 오라버니가 '수제는 힘드니까 시판용으로도 괜찮아'라고 말씀하셨지만,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오라버니를 위해 그 정도도 수고를 아낄까요!

특별히 올해엔 중요한 고등과 학교별 고사도 있었던 만큼, 합격기원도 겸해서 애정 가득한 수제 초콜릿을 선물했습니다.
오라버니도 맛있게 드셔주셔서, 대만족이었습니다.
그렇게 기뻐해주셨으니, 내년에도 꼭 노력할께요!

"어라? 킷쇼우인 씨는 카부라기 군한테 초콜릿 안 줬어?"
"어머, 제가 왜요?"

뭐죠 그 터무니없이 불안한 발상은.

"아니, 틀림없이 킷쇼우인 씨도 카부라기 군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아요."

저도 모르게 단호하게 부정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구요. 누가 그렇게 무서운 짓을 하나요.

"그렇구나. 아, 혹시 엔죠 군?"
"그쪽도 아니랍니다."

그러니까 왜 선택지가 두 개 밖에 없나요.
뭐랄까요. 그렇게 인기 있는 사람들은 싫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확실히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인기가 많은 사람은 경쟁자가 너무 많아서 무서운걸요.

우웅.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러고보니 지금의 세계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적이 없네요. 첫사랑도 아직입니까, 저.
전생에서는, 첫사랑은 사촌오빠였는데요.

히이! 이거 리리나랑 같잖아요!
그래도 저는 그렇게 남한테 폐를 끼치던 아이는 아니었을 거에요…아마도.

확실히 설날에 연날리기도 하고 놀아 주셔서, 상냥함에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동급생의 남자들처럼 행패를 부리지 않으셨던 점이 포인트 높았던 겁니다.

전생에서 제 초등학교 동창 남자애들은 청소시간에 빗자루로 하키하고, 심술로 여자애들한테 공을 던지거나 뭐가 그렇게 재밌는 건지 우유 원샷 경쟁이나, 소풍에 가져간 제 과자를 가로채선, '맨날 이런 것만 먹으니까 뚱뚱한 거야─!" 라고 막말하던 바보뿐이었던 거에요.

뭐가 '뚱보'인가요, 철부지 놈들! 그때 제 사이즈는 뚱뚱한 게 아니라 통통한 거라구요!

그 바보한테는 눈오던 날에 꾹꾹 뭉친 눈덩이를 던져 줬지만요. 재빨리 숨어서, 범인이 누구나며 엄청 화내던데. 꼴 좋은 거에요.

덕분에 서란에는 그 대바보들 같은 남자애는 없지만, 이 학년에는 카부라기, 엔죠라는 찬란한 남자가 두 명이나 있으므로, 아쉽게도 다른 남학생들의 존재감이 약간 엷습니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 저 둘 말고도 나름대로 인기있는 아이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만요.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나, 불우한 남자들.


하지만 착한 남자라.
제 주변의 상냥한 남자라고 하면, 오라버님이나…

옆의 아키자와 군을 똑바로 바라봤습니다.

"어, 뭐야?"

아키자와 군도 상냥한 애죠.
학원에서도 편하게 말을 건내고, 이제는 학교에서 항상 함께 있는 여자애들보다 아키자와 군과 수다떨고 있을 때가 본연의 제가 나온다는 기분이 들 정도니까요.
요 앞에는 저보다 먼저 가서 문을 열어주기도 했고요. 신사죠.
얼굴도 갈색 다람쥐같이 귀엽고.

"저기 킷쇼우인 씨, 나 뭔가 했어?"
"아니요. 별로요."

빙그레 웃으며 속였습니다.

아키자와 군은 착하고 굉장히 좋은 아이지만, 왠지 '좋은 친구'라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좋은 사람일 뿐이다'라는, 아키자와 군의 장래의 포지션이 보이는 것 같네요──.

제가 그렇게 쓸모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는 전혀 모르고, 아키자와 군은 싱글싱글 웃으며 학원 교재를 책상 위에 꺼냈습니다.
……미안, 아키자와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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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20/06/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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