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허,견실을 모토로 살고 있습니다. #025.
제 25화.
그 다음주. 학원에서 아키자와 군에게 내가 간 뒤 후키오카 씨가 어땠는지를 물어봤습니다.
"으음, 왠지 킷쇼우인 씨를 엄청 신경쓰고 있었어."
"그렇겠죠."
저도 반대 입장이었다면 꼬치꼬치 캐물었을 테니까요.
"이상한 오해도 하는 것 같고."
"이상한 오해라니. 구체적으로는요?"
"내가 킷쇼우인 씨를 좋아하냐던데, 아니면 킷쇼우인 씨가 나를 좋아하는 거 아니냐던가. 아! 물론 아니라고 했어! 킷쇼우인 씨가 나를 좋아한다니, 나는 그런 생각은 안 하니까! 기분 나빠졌다면 미안."
"아뇨, 별로요."
화내려는 생각은 아니었거든요. 흔히 일어날 법한 일이기도 하고.
"후키오카 씨는 아키자와 군을 많이 좋아하는군요."
푸욱, 확신을 담아봤습니다.
"으왓?! 갑자기 뭐야! 너, 너……."
"됐으니까 침착해져 봐요. 그래서, 어때요? 아키자와 군은 후키오카 씨의 마음을 알고 있어요?"
"마, 마음이라니. 우리는 그, 그냥 남매같은 사이……."
"무슨 미지근한 말인가요. 후키오카 씨가 당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건 누가 봐도 분명하다구요. 그래서, 어때요? 정말 몰라요?"
아키자와 군은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말할 때까지 계속 찌를 거니까요."
"우우……. 왠지 킷쇼우인 씨, 평소랑 다르지 않아? 그─, 사쿠라코가 나를 사랑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 좋아하고 있다는 건 알지만, 소꿉친구로서일지도 모르고. 아, 그러고 보니 유치원 시절에, 내……그러니까…… 신부가 되겠다는 말은 했지, 만?"
왕도네요.
"그래서 매년 발렌타인에 초콜릿도 주고……, 어차피 자주 서로의 집에 놀러 다녔겠죠."
"어라, 어떻게 아는 거야."
"뻔하니까요."
전부 다 보인다니까요?
"아마 가족끼리 어렸을 때부터 친하다는 건, 부모님들끼리 나중에 둘이 결혼했으면 좋겠네~라든가, 사쿠라코가 신부로 와주지 않으려나, 어머나 어서 와요, 같은 대화도 했겠죠."
"어떻게 아는 건데! 분명 그 말 그대로지만!"
그렇죠, 그렇죠.
"제게 아키자와 군의 미래가 보였어요."
"에…… 뭐야 그건."
"아키자와 군이 나중에 후키오카 씨가 아닌 다른 여자애와 결혼할 경우 아키자와 군의 어머님과 아키자와 군의 신부 사이가 미묘해질걸요?"
"어째서?"
"아키자와 군의 어머니는, 분명 어릴 때부터 아끼던 후키오카 씨와 아들인 아키자와 군이 결혼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죠. 그리고 후키오카 씨 자신도 그걸 바라고 있어요. 그런데 아키자와 군이 다른 여자를 데려오면 마음에 들지 않겠죠? 후키오카 씨가 뒤에서 울기라도 했다간 힘들어질 테고요. 그야 아키자와 군의 아내가 밉겠죠."
"어머니가 그럴 리가……."
전생에서 본 목요드라마에 따르면, 시어머니의 마음에 들지 않는 아내를 대하는 시어머니는 무서워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키자와 군은 각오를 다지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각오?"
아키자와 군은 기분 탓인지 안면이 창백해진 것 같습니다.
"후키오카 씨의 마음을 받아들일 경우에는 결혼에 골인할 각오를 하는 게 좋을껄요? 아무래도 가족 모두와의 교제고요. 도중에 헤어지기라도 했다간 엄청 거북한 관계가 되겠죠. 만약 후키오카 씨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빨리 말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대로 질질 끌었다간 나중에……."
"나중에?"
"수라장이겠죠."
강사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셨기에, 수업이 시작됐습니다.
아키자와 군은 창백해져서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듯 했지만, 전 제가 할 말은 다 해서 시원해졌습니다.
절대로 왕도의 주인공 포지션인 아키자와 군이 질투나서, 조금 괴롭혀주려는 생각이 든게 아니니까요? 절대로 아닙니다.
그 이후, 아키자와 군은 여러모로 후키오카 씨와의 일을 상담해 오게 됐습니다.
아키자와 군의 소꿉친구인 후키오카 사쿠라코 씨는 제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서란 초등과 입시에 일부러 실패해 다니려고 했던 가톨릭 계열의 여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집이 근처라 태어났을 때부터 사이가 좋아 유치원도 함께 다녔고, 본인은 아키자와 군과 함께 서란으로 가고 싶었다고 하지만, 후키오카 씨의 어머니의 모교인 유리노미야 여학원으로 딸을 보내고 싶다는 희망이 있어서, 서란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후키오카 씨가 최근 또 서란으로 가겠다고 한 모양입니다.
십중팔구, 제 존재 때문이겠죠.
지난번에 만났을 때는 청초한 일본풍의 미소녀인 줄 알았는데, 연애에 관해서는 꽤나 저돌적이고 맹진하는 타입인가 봅니다.
여자판 미니 카부라기 같은 부분일까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러게요."
솔직히 제 연애 지식은 전생에서 읽은 소녀 만화가 거의 전부입니다.
남의 연애상담에 응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그럼, 이제 어쩔까요.
"우선 후키오카 씨가 가장 걱정하고 있는 건 제 존재겠죠? 그렇다면 차라리 후키오카 씨도 이 학원에 다니게 하는 건 어때요? 서란에서는 저랑 아키자와 군은 거의 접점이 없으니까요."
사실은 더 귀찮은 일이 될 것 것 같아서, 같은 학원에 다니는 건 싫지만요.
하지만 아키자와 군의 문제인걸요. 어쩔 수 없죠.
뭐, 저는 라이벌이 아니야~ 아키자와 군은 그냥 친구야~라는 걸 직접 보고 알아주면 좋겠네요.
당장 아키자와 군은 이 이야기를 후키오카 씨에게 말했는지, 5학년으로 진급한 봄부터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발렌타인 초콜릿은 평소 이상으로 엄청나게 기합이 들어간 물건으로,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아키자와 군은 조금 무서웠던 모양입니다…….
저, 또 제 목을 조여버린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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