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ver lining's tapestry

2015년 12월 4일 금요일

겸허,견실을 모토로 살고 있습니다. #018.

제 18화.


학원에 가니 악의 한줌 담기지 않은 아키자와 군의 미소가 저를 반겨줍니다.

그 검은 둘이랑은 달리, 아키자와 군의 이 웃는 얼굴은 표리가 없습니다.
아 치유계란…….

"왜 그래? 킷쇼우인 씨……피곤해?"
"아, 네, 여러가지 있어서요."

그래요, 여러모로 있었죠.

가급적 황제와 얽히지 않고 지냈는데, 설마하던 심부름꾼이 되다뇨.
뭐하는 거죠, 저는…….

"그렇구나. 괜찮아?"
아뇨, 전혀 괜찮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때묻지 않은 아키자와 군을 말려들게 할 수는 없죠.

"제가 임무에 실패하면, 뼈는 주워 주세요……."
"응?"


원래 제가 아이라 님에게 황제가 지령대로 물어본들 정말 대답해 줄까요.
아이라 님과는 친하게 지내고 있지만, 과연 거기까지 알려주시려나.
그래도 알려주지 않으시면 저는 어떻게 될지요…….
쓸모없는 심부름꾼이라고 욕할까요?
그 정도라면 괜찮은데요.
그 카부라기 마사야에게 미움받은 여자로 학원에서의 입장이 나빠지는 건 곤란합니다만…….
뭐랄까, 살롱에 있던 다른 멤버들 앞에서 스파이 명령을 받았으니까, 제가 그 녀석의 심부름꾼이 되었다는 걸 그 아이들에게 알려져 버렸는데요?

……학원 카스트가 하위로 전락할 날도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아아, 나쁜 상상만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저기, 킷쇼우인 씨. 이거 먹을래?"
"엣."

아키자와 군이 가방에서 꺼낸 것은 개별 포장된 피난시에.

"엄마가 배고프면 먹으라고 줬어. 단걸 먹으면 기분도 괜찮아지지 않을까?"
아키자와 군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습니다.

아, 아키자와 구────운!!

정말 좋은 아이군요! 당신은 천사입니다!
저 두 사람이랑은 천지차이네요!
저, 당신과 친구가 되서 좋았네요!

"고마워요, 아키자와 군!"

아키자와 군에게 받은 피난시에를 먹으니 정말 조금 힘이 났습니다.
아키자와 군이라면 제 비장의 티롤리언 초코와 콩가루 본맛을 나눠줘도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되는 거에요!


그리고 마침내, 영어교실의 날이 왔습니다.
그날 이후로 살롱에는 찾아가지 않은 저였지만, 방과 후 학교을 나오니 복도에 있던 황제가, '너, 알고 있겠지.'라는 눈으로 이쪽을 봐왔기 때문에, 스파이인 저는 '물론이죠!'라고 똑같이 눈으로 대답을 하고, 빠른 걸음으로 현관 복도를 향해 달아났습니다.
이제 여기까지 오면 얌전히 심부름을 할 수밖에요.


영어 교실 수업이 끝난 뒤, 저는 마음을 졸이며 아이라 님이 오시는 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킷쇼우인 가의 마중에는 미리 조금 늦는다고 말해 뒀으므로 괜찮지만, 문제는 아이라 님이 언제 오시느냐입니다.
수업에 아슬아슬하게 오시면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없으니까요.
역시 아이라 님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구요.
부탁 드립니다, 아이라 님. 제발 빨리 와주세요.

하늘은 저를 버리지 않으셨는지, 아이라 님은 비교적 빨리 나타났습니다.

"아이라 님!"
"어머, 레이카 양. 안녕."

하아, 아이라 님, 다행이다~.

"저기, 사실 저, 아이라 님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듣고 싶은 거? 나한테?"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기 싫으니 계단 층계참의 가장자리에서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유리에 님에 대한 것입니다만."
"유리에?"

아이라 님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아, 그게. 저기, 유리에 님은 카부라기 님에게 얼마나 화가 나셨는지, 그리고 언제쯤 용서하실 생각이실까요."

시간이 없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지만, 아이라 님은 점점 더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유리에와 마사야의 일을 왜 레이카 양이 그렇게 궁금해하니? 일부러 내가 오기를 기다릴 정도로?"

그거 수상하네요.
카부라기와 전혀 친하지도 않은 제가, 두 사람의 일에 발을 디뎌 물어보는 거니까, 당연한 반응이네요.
이래서야 저, 단순히 속물이라고 생각되고 있으면 어쩌죠.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야기에 대해 재미로 나섰다가는 마사야를 화나게 할껄?"

이미 화나게 만들었습니다만.
게다가 그 카부라기 마사야의 지시인데요.
차라리 사실대로 말해야 할까요.
하지만 그러면 스토커 카부라기의 편이라고 생각하셔서 절대 알려주지 않으실 텐데요. 우~웅…….

고민하는 저를 보시던 아이라 님이 눈을 가늘게 뜨셨습니다.

"혹시, 레이카 양, 마사야한테 뭔가 당했어?"

뭐라구요!
어떻게 아신 건가요!
아이라 님도 황제와 똑같은 심안의 소유자신가요!?

"저, 저기……."

하지만 여기서 순순히 인정해도 괜찮을까요? 아니면 어떻게든 반항해봐야 할까요.

"아─, 웅. 알았다. 어차피 마사야에게 나한테 유리에에 대해 물어보고 오라고 해서 왔구나?"

바로 그거에요!
정말 대단하신데요, 아이라 님. 어째서 전부 아시는 거죠?!

"그 녀석 전혀 반성하지 못하고 있구나. 유리에가 화낸 이유, 모르는 걸까. 마사야가 말 따윈 내버려 두라고 말하고 싶지만, 레이카 양은 그럴 수 없지?"
"네, 그래요."

붕붕,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좋아. 내가 유리에한테 물어봐줄게. 얼마나 화났냐에 대해서는, 이렇게 위협해서 멋대로 부리는 일을 하면 더 화나게 한다고 말해 둬."
"그건~."

소심증인 저로서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대사인걸요.

"후훗. 그렇지만 나도 지금부터 수업이고, 유리에에게 물어보러 가고 하니까……. 물론 다음 주의 영어 교실까지는 늦지?"
"모르겠지만, 아마……."

'모래 영어교실'도 기다리지 않을 것 같던 황제가 1주일이나 기다린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네요.

"알았어. 그럼 레이카 양. 휴대폰 가지고 있니?"
"네."


별로 사용할 기회도 없었지만, GPS가 붙어 있으므로 보안 목적을 위해서 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원의 쉬는 시간에 편의점에 갈 때는 알리바이 공작을 위해, 물론 교실에 두고 가죠.


"그럼 주소 교환할까? 그래서 유리에와 이야기를 하면 메일을 보낼께."
"괜찮을까요?!"


오오! 설마 아이라 님의 주소 겟이라고는!

사실 아이라 님은 그 숏컷과 중성적인 외모에서 주변의 남자보다 훨씬 인기가 많은 분이십니다.
아이라 님에게 마치 사랑같은 동경을 품고 있는 아이도 많고, 아름다운 공주님인 유리에 님과 그 공주를 지키는 늠름한 기사님의 아이라 님이라는 기이한 망상이 일부에서 행해지고 있기도 할 정도라고요.

……그리고 저도, 그런 아이라 님에게 몰래 동경하고 있는 인물!
그래요! 제가 동경하고 있는 건 황제가 아니라, 모란의 기사, 아이라 님입니다!

우쭐대지 말라고요! 그 횡포 콤비!

그래도, 결국은 본인들에게는 불평 하나 못하는 소심한 패배자의 넋두리지만요…….
그러나 괜찮습니다.
일단, 지령은 완수한 것 같고.

또 아이라 님께서는 제가 처한 상황을 알아주시고, 제편이 되어 주실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아이라 님의 번호라는 때아닌 포상까지 손에 넣어 왠지 기분이 좋아진 겁니다.

자, 돌아가볼까요?
오늘 오라버니는 학원에서 늦게 들어오시는 날이었죠, 우응~, 재미없는 거에요.
내일은 상대가 되어주시려나?

라란,란.


걱정거리가 해소되어 들뜬 기분으로 영어 교실을 나온 제가 본 것은,
검은색의 차 앞에서 팔짱을 끼고 서있는 카부라기 마사야의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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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20/06/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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